제주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모빌리티 서비스 측면에서도 매우 독특한 지역이다. 섬이라는 독특한 지리적 환경, 거주자보다 방문자(관광객 등)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적 특성, 선구적 친환경 정책에 기반한 전기차 보급 등이 만들어 내는 모빌리티 생태계가 마치 갈라파고스 섬의 자연 생태계 마냥 독특하다.
독특한 지리적 환경이 주는 자동차 중심의 독특한 교통 환경
제주도는 자동차가 '순도 높게' 이용되는 지역이다. 일단, 도내 이동과 도외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외부에서 제주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배나 비행기를 이용한다. 반면에, 제주도 내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거의 100%에 가깝다. 철도나 수로(강, 호수 등)를 이용한 교통수단도 거의 전무하다. 육지와 연결된 도로가 없고(cf. 거제도), 기차나 배를 이용한 역내 이동이 없다는 점은 제주도만이 가지는 매우 독특한 점이다.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
제주도의 인구는 이제 70만 명 수준이다. 반면, 1년에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 수는 2018년 14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와이, 오키나와보다 많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비행 노선은 세계에서 제일 혼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평균 체류 기간(2018년 기준)은 지난해 기준 약 4일(내국인 3.95일, 외국인 4.9일)이라고 한다. 현지인 70만 명이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을 때(365일 체류한다고 가정), 매 순간 평균적으로 약 16만 명(1433만 명*4일/365일)의 관광객이 제주도에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 현지인 10명당 2명 이상(16만 명/70만 명)의 외지인이 제주도에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구적 특성도 제주도만의 독특한 점이다.
압도적인 전기차 보급
도로를 누비는 전기차 수도 전국 어떤 시도보다 높다. 에너지를 육지에서 끌어와야 하는 제주도의 특성에 기반하여 카본 프리 사업 등 친환경 정책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면서 제주도는 현재 전국에서 전기차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제주도의 인구는 70만 명으로 일개 광역시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전기차 보급 대수는 전국에서 단연 1위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전기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의 전기차 보급 대수는 총 57,289대다. 이중 약 30%인 16,352대가 제주도에 보급되었다. 2위인 서울의 전기차 보급 대수가 11,580대에 불과한 점을 생각한다면, 제주도에 보급된 전기차 대수는 엄청난 수준이다. 인구 1명당 전기차 보유 대수로 따진다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전기차 보급 대수가 많은 만큼, 전기차 충전 시설도 많다. 2018년 기준 전국에 약 1700개의 급속 전기차 충전 시설이 보급되어 있는데, 제주도는 149개로 경기(199개), 경북(196개), 강원(173개)에 이어 4위다. 충전 시설이 행정 구역의 면적에 일정 수준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면적 대비 충전 시설의 보급도 전국 최상위다.
갈라파고스와 같은 모빌리티 생태계를 가진 제주도
육지와 바다로 단절되어 있고, 자동차가 역내 교통 분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으며, 관광객의 비중이 높으며, 전기차 보급이 높은 제주도의 모빌리티 생태계는 갈라파고스에 가깝다. 한때 일본의 전자산업을 두고 이야기하던 갈라파고스 증후군 따위의 부정적인 뉘앙스의 그 갈라파고스가 아니다. 찰스 다윈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영감을 받은 그 태평양의 독특한 생태계를 가진 갈라파고스 섬과 같이 독특한 모빌리티 생태계란 뜻의 갈라파고스다.
[참고] 갈라파고스 증후군
갈라파고스 증후군(영어: Galápagos syndrome) 또는 갈라파고스화(일본어: ガラパゴス化 가라파고스카[*])는 기술이나 서비스 등이 국제 표준에 맞추지 못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여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 (출처: 위키피디아 )
천혜의 규제 샌드박스, 제주도
제주도의 독특한 모빌리티 환경은 연구자나 사업자, 정책담당자에게 다양한 실험 무대가 될 수 있다. 모빌리티 연구자에게 제주도는 통제가 잘 된 실사판 실험실이 될 수 있다.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자에게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출시해 보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가 될 수도 있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다수의 관광객에게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좋은 홍보처가 될 수 있다. 정책담당자에게는 선구적으로 보급된 전기차 생태계의 시행착오나 베스트 프랙티스를 참고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될 수도 있고, 현지인과 관광객을 위한 교통 정책을 펴는데 참고할 수도 있다.
나아가 규제 프리존 등의 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제주도는 다양한 혁신 서비스들을 실험적으로 출시해 볼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섬이라는 물리적으로 단절된 환경, 평균 4일간 체류하는 관광객이라는 대상은 특정 서비스의 부작용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대신, 혁신 서비스 체험(소비자) 및 실험(공급자)을 할 수 있는 현존 최고의 샌드박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중소 벤처기업부에서 발표한 규제자유특구에서 제주도가 빠진 것이 다소 아쉽다.
규제자유특구
규제자유특구란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특례와 지자체·정부 투자계획을 담은 특구 계획에 따라 지정된 구역으로, 지역의 산업·연구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역단위의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제도이다.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위대한 이론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처럼 갈라파고스와 같은 제주도의 모빌리티 환경이 위대한 혁신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관광 자원으로도 아름다운 제주도지만, 왠지 잠재력을 모두 못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새로운 시도가 과거 지향적인 규제, 정부 및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번번이 막히면서 과거 일본 전자산업처럼 한국의 혁신 생태계 자체가 갈라파고스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제주도라는 특정 행정 구역에서 모빌리티라는 특정 산업이라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다면, 한국 경제의 혁신에 작은 숨통이나마 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천혜의 생태계를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혁신 산업에도 활용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