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본론-결론이 아니다. 기승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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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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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은 리듬에서 나오는데, ‘서론-본론-결론’ 구조에는 리듬이 없다. 재미가 없다.
서론-본론-결론은 재미를 위한 구조가 아니다. ‘메시지 전달’이 목적인 구조다. 효율적인 구조다. 독자 감정이나 독서하는 즐거움을 배려하지 않고 곧바로 필자 주장을 펼치려고 한다면 ‘서론-본론-결론’으로 글을 쓰면 된다.
문자가 탄생한 이래 ‘서론-본론-결론’은 가장 효율적인 글쓰기 방법이었다. 전쟁 발대식에도 ‘서론-본론-결론(나가자 싸우자 이기자)’이 쓰였고 평화를 위해서도 ‘서론-본론-결론(갈등을 멈추자-전쟁을 멈추자-평화롭게 살자)’이 쓰였다. 하지만 ‘서론-본론-결론’은 메시지와 주장을 전달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재미난 독서를 위해서는 좋은 구성이 아니다. 시간이 궁핍하고 요점만 따박따박 전달하려면 이 같은 구조가 효율적이다. 필자가 전달하려는 바를 독자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안다’와 ‘느낀다’는 다르다. 우리가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한 걸음 나아가 메시지를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깊고 울림이 있는 메시지 전달에는 ‘기-승-전-결’ 구조가 효과적이다. 아래 글을 보자.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起(기)는 ‘일으켜 세울 기’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기상(起床) 할 때 쓰는 기 자다. 글에서는 ‘주제를 일으키는 단락’을 뜻한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주제 그 자체가 아니라 ‘주제를 일으키는’ 단락이 기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承(승)은 기에서 일으켜 세운 주제를 발전시키는 단계다. 이을 승이다. 대개 첫 번째 문단 내지는 첫 번째 단락 그러니까 기와 두 번째 단락은 하는 얘기가 비슷하다. 엉뚱한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앞에서 튀어나온 주제를 이어가는 단락이 승이다.
이렇게 글이 전개되면 독자들은 앞 단락에서 나온 이야기에서 호흡을 잃지 않고 읽게 된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그다음이 轉(전)이다. 장면과 메시지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단계다. 전은 ‘펼치다’라는 전(展)이 아니라 ‘돌린다’는 뜻이다. 즉, 장면전환을 뜻한다.
자, 독자들이 여기까지 바쁘게 읽었다. 그럼 이제는 이 숨 가쁜 독자에게 여유를 줄 차례다. 쉴 여유를 주면서 약간 딴 이야기를 해준다.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얘기를 한다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약간 딴’ 이야기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전을 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전에 해당하는 듯한 단락을 빼 보기다. 초고를 완성해 놓고서, 다시 읽으며, ‘서론-본론-결론’ 구조에서 뭔가 이탈해 있는 단락을 찾아내 없애보라.
첫째, 그 문단 혹은 의미단위를 완전히 덜어내고서 앞뒤를 연결해 읽어봤을 때 무난하게 읽혀야 한다. 둘째, 무난하긴 한데 뭔가가 허전해야 한다. 허전하지 않다면 그 단락은 불필요한 단락이고 허전하면 ‘있으면 글이 더 재미있어지는’ 전이다.
그 ‘있으면 더 재미있어지는’ 단락을 더 재미있게 만들 고민을 해본다. 그러고 나서 결(結)로 전체를 묶어서 정리를 하면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글이 끝난다. 독자들이 결론 부분을 읽고 감동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 장면전환, 전이라는 국면이 필요하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結(결)은 맺는다는 뜻이다. 글을 매듭짓는 단계가 결이다. 매듭을 어설프게 지으면 풀어진다. 매듭은 ‘꽁꽁’ 묶어서 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결이다. 결에 대해서는 다음 장 ‘관문’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렇듯 글이란, 기-승으로 이어져 전에서 한 번 휴식을 취한 뒤 결론이 나와야 한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첫 문장을 독자가 읽으면서 아 이제 이 사람이 뭘 얘기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알아채 버리면 그 이하는 재미를 줄 수 없다. 자, 이래도 안 볼래 하고 재미를 던져주는 단락이 전이다. 없어도 말은 된다. 하지만 있는 것보다는 글이 재미가 없고 사람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힘이 떨어지게 된다. 이 재미와 힘을 붙잡는 단계가 전이다.
장면 전환적인 국면을 만들어 숨을 쉬게 만든다. 이때까지 긴장했던 독자들에게 여유를 주며 긴장을 풀어줬다가 마지막에 한 방을 쳐올려 본다. 결론은 뒤로 한 걸음을 후퇴했다가 내지를 때 더 무섭다.
논문이나 리포트에 나오는 서론-본론-결론 형태의 글 구성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다. 아니, 논문이나 리포트도 마찬가지다. 레퍼런스가 있지 않은가. 풍부한 반증 자료와 선행연구 사례, 그리고 논문 결론에 반하는 반(反) 실험적인 근거들을 제시한 다음 이를 역으로 반박하면 논문은 더 풍부해진다. 이게 이 책에서 말하는 ‘전’이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장면전환에 따른 의미단위의 배치
문장을 적절하게 끊고 적절한 곳에 배치하면 리듬이 생긴다. 국면 전환은 분명히 있는데 그 국면들이 쉼 없이 이어져 있으면 독자들은 헷갈린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전환을 상상해 보자. 한 신(scene)에서 다른 신으로 내용이 넘어간다면 그 넘어가는 부분에서 문단을 나눠보라. 독자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독자들은 요만큼의 글덩어리, 의미단위를 읽고 1초든 2초든 쉼표를 주고 그다음으로 시선을 옮긴다. 흐름이 비슷하게 문단이 나눠져 있어야 사람들이 호흡을 글에 맞춰서 읽을 수 있게 된다.
‘글덩어리’ 혹은 ‘의미단위’는 필자가 만든 개념이다. ‘하나의 장면 혹은 국면이나 소재를 이야기하는 문단 묶음’이다. 문단이라는 개념과 일치할 때도 있고 여러 문단을 뭉쳐서 의미단위 하나로 묶을 수도 있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소설가가 된 이 기자가 훗날 말했다. 팩트를 챙겨라, 그다음에 팩트를 왜곡하면 된다. 기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덕목이지만 소설가로서는 이만한 덕목이 없다. 팩트가 있으면 그 팩트를 버무려 탁 던지면 스토리가 된다. 팩트 없이 머릿속에서 나오는 스토리는 누가 보더라도 빈틈이 많고 구멍이 많은 글이다. 상상력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수식어 없애기, 팩트에 충실하기, 짧게 쓰기, 단문으로 쓰기, 물 흐르듯이 쓰기. 마지막 문장도 마찬가지다. 도덕 강의식 문장은 금기다. 필자가 없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면 쓰지 않아야 한다. ‘필자(筆者)’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지워야 할 때도 알고 있으면 좋은 필자다. 강의는 일단 여기까지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
 
 
설계를 해서 써라.
팩트를 써라.
짧게 써라.
리듬을 맞춰라.
리듬 있는 구성이란, 앞에는 뜸을 들이고 중요한 팩트와 주장은 뒤에 숨겨놓는 구성을 말한다. 100만큼을 말하고 싶다면 90은 뒤에 은폐해 놓고 10만큼만 앞에서 폭로한다.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숨겨놓은 중요한 팩트가 양파 껍질 벗기듯 튀어나온다. 결정적인 한 방은 언제나 숨겨 놓는다. 독자들은 읽어나갈수록 흥미가 증폭되고 기대감이 커진다. 그러다 최후의 한 방에 독자는 무너지고 만다. 그게 좋은 글이다. 귀신 정체를 미리 알려주는 귀신 이야기가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 밀리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