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Eats Everything: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2011년,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월스트리트저널에 유명한 글을 썼다.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서점은 아마존에, 음반사는 스포티파이에, 택시는 우버에 잡아먹혔다.

14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문장이 필요하다.

“AI is Eating Everything—Including Software.”

AI는 세상만 먹는 게 아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먹고 있다.


Before SaaS: CD 사서 설치하던 시절

2000년대 초반까지, 소프트웨어는 “물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쓰려면 용산 전자상가에서 CD를 사야 했다. 가격은 수십만 원. 설치하는 데 30분. 새 버전이 나오면 또 돈 주고 새 CD를 사야 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더 심했다. 회계 프로그램, 고객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서버를 사고, 전산실을 만들고, 유지보수 인력을 고용해야 했다. 수억 원이 들었다.

문제점:

  • 초기 비용이 너무 큼 (서버, 라이선스, 설치)
  • 업데이트할 때마다 돈과 시간 소모
  • 소규모 기업은 엄두도 못 냄

SaaS: “설치 대신 구독, 소유 대신 접속”

2000년대 중반, 판도가 바뀐다. **“소프트웨어를 사는 게 아니라 빌린다”**는 개념이 등장한다.

Salesforce(1999년 창업)가 선구자였다. “소프트웨어의 종말(No Software)“을 외치며, 고객 관리 시스템을 웹 브라우저로 제공했다. 서버 살 필요 없음. 설치할 필요 없음. 그냥 로그인하면 된다. 월 사용료만 내면 항상 최신 버전이다.

이게 **SaaS(Software as a Service)**다.

대표적인 SaaS 서비스들

분야서비스대체한 것
문서/생산성Google Docs, MS 365, Notion로컬 오피스 프로그램 (한글, MS 오피스 CD)
협업/소통Slack, Zoom, Microsoft Teams이메일 + 회의실 + 전화
고객관리(CRM)Salesforce, HubSpot엑셀 고객 명단 + 영업 담당자 수첩
인사관리(HR)Workday, flex종이 근태장부 + 인사팀 엑셀
개발 인프라AWS, Sendbird, Twilio자체 서버실 + 개발팀

SaaS가 성공한 공식

“사람 한 명 월급 < 소프트웨어 월 구독료”

  • 고객 관리 담당자 월급: 300만 원
  • Salesforce 월 구독료: 10만 원 마진율 70~80%. 한번 만들면 복제 비용 거의 0원. 돈 찍어내는 구조였다.

하지만 숨겨진 전제가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타이핑을 해야 한다.

Salesforce가 아무리 좋아도, 영업사원이 미팅 끝나고 “김 부장, 예산 검토 중, 다음 주 2차 미팅"이라고 직접 입력해야 했다. Notion이 아무리 편해도, 누군가 회의록을 정리해서 써야 했다. Slack이 아무리 빨라도, 사람이 메시지를 읽고 판단하고 답장해야 했다.

SaaS는 **“일하는 사람"을 대체한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도구”**를 판 것이다.


After SaaS: Agent AI가 바꾸는 것

2024년, 다시 판도가 바뀌고 있다. AI가 **“타이핑하는 사람”**마저 대체하기 시작했다.

각 SaaS가 받는 타격

1. Salesforce, HubSpot (CRM)

  • Before AI: 영업사원이 미팅 끝나고 CRM 열어서 내용 입력
  • After AI: 미팅 녹음하면 AI가 알아서 요약해서 CRM에 입력. “김 부장, 예산 3억 검토 중, 경쟁사 B도 만나는 중, 2주 내 결정 예정"까지 자동 기록. → 영업사원이 Salesforce 화면을 열 이유가 사라진다.

2. Notion, Google Docs (문서/생산성)

  • Before AI: 회의 끝나고 누군가 30분 들여서 회의록 작성
  • After AI: Zoom 녹화본을 AI에 던지면 3분 만에 회의록 완성. 액션 아이템까지 정리됨. → “예쁜 문서 편집기"의 가치가 줄어든다. 어차피 AI가 작성하니까.

3. Slack, Teams (협업/소통)

  • Before AI: 메시지 읽고, 판단하고, 답장하는 건 사람 몫
  • After AI: AI가 채널 전체를 읽고 “오늘 중요한 건 이 3개"라고 요약. 단순 질문은 AI가 대신 답변. → Slack을 스크롤하며 읽는 시간 자체가 사라진다.

4. Workday, flex (HR)

  • Before AI: 인사팀이 수작업으로 휴가 승인, 급여 정산, 평가 관리
  • After AI: “다음 주 휴가 써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AI가 잔여 휴가 확인하고 승인 처리까지. → HR 시스템 화면을 열 필요가 없다.

핵심: “화면을 여는 행위” 자체가 사라진다

기존 SaaS의 가치는 두 가지였다:

  1. 데이터를 입력하는 곳
  2. 데이터를 확인하는 곳 AI는 둘 다 필요 없게 만든다.
  • 입력? AI가 알아서 한다.
  • 확인? AI가 요약해서 카톡이나 이메일로 보내준다. 기존 SaaS는 “예쁜 인터페이스"의 가치를 잃고, 그냥 백엔드 데이터베이스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기회는 어디에?

구분시장 규모설명
SaaS 시장1조 달러반복적·구조화된 업무 (소프트웨어로 대체 가능했던 것)
서비스 산업16조 달러상황 판단이 필요한 업무 (사람만 할 수 있었던 것)

지난 20년간 SaaS가 먹은 시장은 “소프트웨어화 가능했던” 1조 달러다.

하지만 세상에는 소프트웨어가 못 건드린 16조 달러가 있다:

  • 콜센터: 고객 감정 파악, 예외 상황 판단
  • 병원 원무과: 케이스마다 다른 보험 청구
  • IT 외주 개발: 창의적 문제 해결
  • 법률/회계 서비스: 복잡한 맥락 이해 이 일들은 “상황 판단"이 필요해서 소프트웨어가 못 했다. 그래서 사람이 했고, 그래서 비쌌다.

Agent AI는 이 상황 판단이 가능하다.

경쟁의 축이 바뀐다:

시대경쟁의 본질예시
SaaS 시대더 좋은 소프트웨어Notion vs Evernote
AI 시대사람을 대체하는 에이전트AI 콜센터, AI 회계사, AI 개발자

“더 예쁜 CRM"을 만드는 건 이제 의미가 작다. 어차피 사람이 그 화면을 안 볼 테니까.

진짜 기회는 **“그동안 소프트웨어가 못 건드렸던, 사람만 할 수 있었던 일”**을 AI로 대체하는 것이다.


정리: 세 시대의 비교

Before SaaSSaaSAfter SaaS (Agent AI)
비유집을 직접 지음호텔 방을 빌림집사가 모든 걸 관리함
형태CD 패키지 / 설치웹 로그인 / 구독대화형 AI / 자동화
역할기능 제공효율적인 도구업무 대행 (Agent)
대체 대상종이·수작업전담 인력 일부서비스직 전체
사람의 역할설치·유지보수 + 사용사용 (입력·확인)감독·최종 판단
핵심소유 (Ownership)접속 (Access)결과 (Outcome)
비용 구조수천만~수억 (초기 투자)월 수만~수십만 (구독)결과당 과금? (미정)

Software Eats the World → AI Eats Everything

앤드리슨의 예언은 맞았다. 소프트웨어는 정말로 세상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그 소프트웨어마저 지금 잡아먹히고 있다. SaaS는 “도구를 싸게 제공"했다. AI는 “도구를 쓰는 사람"까지 대체한다.

Software ate the world. Now AI is eating software.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